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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Correctness?"
통합교과형 논술 완전 정복
2017년 11월 30일 (목) 10:36:55
   
 

웬 영문 제목인지 의아할 수도 있겠다. 이 컬럼에선 대입 논술고사 문제들에만 한정해서 논술문 작성 방법과 해설을 제공하니 말야. 그런데 이 제목에서 소개하는 개념을 번역하기가 마땅하지 않다. 그냥 직역하면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번역해도 뜻이 와 닿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저 북쪽의 뚱뚱한 젊은 독재자를 반대하는 것 아니면 박사모에 반대하는 것 그것도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기본 가치를 지지하는 걸 뜻하나? 어느 쪽이든 당연히 옳은 것일 수 있겠지만 새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타이틀로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Political correctness’는 미국 사회에서 인종, 성, 종교 등과 관련된 잘못된 언어 사용이 초래하는 혐오감과 불이익,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그러니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이 주제는 대입 논술고사에서도 즐겨 다루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둘러싼 논의와 배경, 취지, 한계 등을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정점을 찍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정치적 올바름(영어: Political Correctness, PC)은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특히 다민족국가인 미국 등에서, 정치적(Political)인 관점에서 차별·편견을 없애는 것이 올바르다(Correct)고 하는 의미에서 사용되게 된 용어이다.

이 주장 가운데 일부는 언어의 문법 구조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사피어-워프 가설과 관련되어 있다. 일부 언어학자들이 어떤 종류의 언어를 쓰느냐가 인간의 사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고 여기고 있지만, 이 가설을 확대해서 해석하면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볼 수도 있다. 곧 성차별적인 어휘를 쓰면 성차별주의자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주제는 거대한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경우 특히나 민감한 요소를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소수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 배경과 맞물리면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조류는 진작에 시작돼서 알게 모르게 우리 문화에 스며든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소수 집단이나 성 차별적인 어휘 사용을 피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영향을 보여준다. ‘살색’ 대신 ‘살구색’을, ‘혼혈(인)’, ‘동성애자’와 같은 표현들을 대체하기 위해 ‘다문화 가정’이나 ‘성적 소수자’와 같은 용어들을 도입한 것들이 그러하다. 이 배경에 바로 ‘정치적 올바름’ 캠페인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Fireman이 Firefighter로 Policeman이 Police officier로 피부색을 가르는 ‘Black, White, Yellow’가 색깔과 무관한 표현(예를 들어 African American)으로 바뀐 것 등이 다 이 운동의 결과라 하겠다. 

앞서 언급한 것은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이다. 더 소개하면 이렇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단어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Native Americans) 혹은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라는 대체어가 사용된다. 에스키모라는 말은 모욕적인 뜻을 담고 있다고 여겨져서 이누이트, 유픽, 알류트 등 세부적인 각각의 민족을 뜻하는 구체적인 용어로 대체됐다. 영어권에서 ‘스튜어디스(stewardess)’라는 말은 여성 승무원만을 가리키는 말로, 남성 승무원을 일컫는 ‘스튜어드(steward)’와 함께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로 대체됐다. 

좋은 취지에서 비롯된 운동이라는 건 분명하지.

   
   
 

이 운동의 취지를 말하는 그림의 배경색이 알록달록하지? 이 무지개색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다음 그림에 씌여진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말은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경멸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말은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 이런 표현을 무심히 사용하다 보면 역시 같은 편견에 휩싸일 수도 있다.

이 주장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니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나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여야만 할 정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운동이 수십 년째 계속되고 단어 하나 하나 문제 삼고 비난하는 일이 많아져서인지 근래에는 반감을 가진 이들과 그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구글에서 ‘Political correctness’(이하 PC로 약칭)로 검색을 하면 놀랍게도 PC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PC를 새로운 독재자, 검열관이라 말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일방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판관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속에 숨어있는 올바르지 않은 것은? 
반대 견해 하나를 소개한다.

요즘 미국 학교에서는 빨간색 잉크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언행을 조심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관례를 흉내내려는 듯 교육계에서도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답안 채점 과정에서 틀린 답에 빨간색으로 ‘X’마크를 하면, 스트레스와 모욕감 등 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은 보다 부드러운 색을 사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 이는 어른, 특히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련한 온실의 꽃’으로 생각하고 실망과 좌절로부터 보호해야만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또 하나의 예이다. 또한 교정에서 ‘피구(避球)’뿐만 아니라 술래잡기도 금지되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설명했듯이, “이 게임에는 ‘희생자’가 있게 마련인데, 이것은 학생들의 자존심을 상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경쟁적인 스포츠를 폐지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대체하자는 교육자들도 있다. 이런 난센스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교육 당국자들이 가장 내세우는 가치가 자존심인 것 같은데, 강한 자존심이 성공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중국이나 인도같이 미국에 도전하고 있는 나라들의 학교 교실들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교사들이 빨간 펜을 주저 없이 사용하고 있다.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경쟁과 비판,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빨간 펜, 줄다리기, 피구 모두를 감당해낼 수 있다. ‘술래’가 돼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는 비판은 이렇게 보여줄 수도 있겠다.

   
 

이 그림에서 보듯 블랙과 화이트는 취향일 뿐이지만  화이트를 선호한다면 바로 인종주의자라는 오해를 유발하거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피로감이 이 카툰에 담겨 있다.

소수집단을 보호하고 종교, 인종, 성에 따른 일체의 차별적인 언어를 피하자는 진보적인 시선이 일상적인 수준의 검열로 느껴질 정도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 피로감이 트럼프의 당선을 도왔다는 분석도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수준을 넘어서 사소한 것들조차 일일이 날선 비판을 하는 PC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층의 짜증과 반감을 부추겼다는 거다. 트럼프 후보는 PC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면서 소심한 보수 시민들이 내심 간직한 백인 우월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남성 중심주의를 거침없이 뿜어냈고 이것이 이른바 Shy 트럼프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그러니 일상 속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하나 하나 문제 삼고 비난을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감이 담긴 카툰을 하나 소개한다. 

   
 

카툰 속에서 사내는 PC를 Garbage라 부르면서 분노한다. 카툰 상단의 띠에 적혀 있는 문구는 노골적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날려버릴 것이라 한다. 이들은 가슴 속에 억눌린 표현을 맘껏 내지르고 싶어한다. 

‘아랍인들, 황인종들, 이 열등한 놈들!’이라고….
 
좋은 취지의 운동이 적당한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묘방이 있어야 하겠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떠오른다. 

자고로 옳은 말이나 참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자 이제 이 주제를 다룬 논술고사 문제를 살펴보자.

※(가)의 ‘이름 부르기’와 (나)의 ‘정치적 올바름’이 전제하는 언어관의 공통점을 (다)의 ㉠과 ㉡의 입장과 관련시켜 서술하시오. 그리고 (라)에 제시된 단어 중 하나를 택하여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그 단어의 함의를 비판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제안해 보고, 그 결과를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밝히시오.(1,200자, 100점)

(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줄여서 PC)은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 민족, 종교, 성, 성적 취향, 신체, 직업, 지역 등에 대한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 혹은 운동을 가리킨다. 본래는 다민족국가인 미국 등에서, 정치적인 관점에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는 의미에서 사용되게 된 용어이다.

PC에서 주되게 겨냥하는 말은 이른바 ‘혐오 표현’이다. 혐오 표현은 공공장소에서는 물론 출판물이나 인터넷을 통한 글쓰기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언어 표현을 일컫는다. 그러나 PC에서는 이처럼 노골적인 혐오를 담고 있는 표현만이 아니라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의식이 은밀하게 숨어 있는 표현까지를 모두 문제 삼는다. 미국에서 ‘chairman’을 ‘chairperson’으로, ‘nigger’를 ‘African American’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이 있었던 것도, 한때 우리나라에서 ‘사랑’에 대한 사전적 뜻풀이에서 ‘이성의 상대’대신에 ‘어떤 상대’로 바꾸었던 것도 이러한 운동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늘어났다. 주된 이유는 다양성을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 오히려 또 다른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단어를 고르는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을 ‘PC 경찰’이라고 부르면서 비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PC’라는 말 자체에 냉소적인 어감이 담기게 된 것이다. 서로 충돌하는 가치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에서, 어떤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다른 입장에서는 올바르지 않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어 왔다. 이들 다양한 관심들은 결국 언어와 사고 중 어느 것이 더 지배적인가 하는 문제로 수렴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두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먼저 ㉠언어가 사고보다 더 중요하며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언어는 사고와 행동, 지식을 배우게 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은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을 그 안에 담고 있는 기호(sign)에 의해서 매개될 수밖에 없는데, 언어가 가장 중요한 매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습득하여 쓰고 있는 언어에 따라 그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인식과 사고방식까지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고가 언어보다 더 중요하며 사고가 언어에 영향을 준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인간이 외부적 환경을 자기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인지 도식에 부합하는 형태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유기체의 인지 도식이나 지식의 구조를 환경적인 상황이나 압력에 부합하도록 변형시키는 과정을 통해 특정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사고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할 때, 이 입장은 이러한 과정이 언어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대신 이 입장은 언어를 사고 혹은 지식이 형성된 이후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 매체로 보고, 언어는 사고가 형성된 이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인간이 기왕에 존재하던 말만을 쓰지 않고 전에 없던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해 주는 증거이다.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라) 일반적 뜻풀이의 몇 가지 사례

   
 

논제 해설
평이하면서도 잘 만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시문들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교과서 수준을 넘지 않지 않으면서 단일 문제로 1,200자를 쓰라고 하고 있으니 비교적 논지 전개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 논제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가) 내용을 다음에 전개할 논지를 염두에 두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식화해 보자.

   
 

이런 구성으로 전개하면 되겠다. 1,200자라는 분량은 일반적으로 논술고사 문제에서 긴 축에 속한다. 이런 답안을 문단 구분도 없이 써서는 안 된다. 문단의 개수는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논지가 너무 짧게 뚝뚝 끊어져도 문제고 한 문단에 너무 많은 내용이 절제 없이 담겨도 문제가 된다.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 문단~다섯 문단 사이로 논제의 요구에 따라 문단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답하면 되겠다.

이 문제는 위의 도식처럼 네 문단 처리를 해도 무방하고 세 문단으로 해도 문제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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