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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강점은 명확하다. 저자는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주목한다. 2000년대 역사소설에서 발견하는 것은 김훈의 실존적 아포리아나 김영하의 탈민족주의적 시선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포착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 사이의 긴장, 그 긴장이 만들어내는 서사적 가능성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허구적 상상력이 시작되고, 역사적 사실의 빈틈에서 상상력이 자유롭게 확장될 수 있다는 통찰은 역사소설의 존재 이유를 정확히 짚는다.
베트남전쟁 소설을 다루는 시선 역시 예리하다. 영웅담이나 피해자 서사 등 전쟁문학이 흔히 빠지는 함정을 우회하면서, 저자는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개작 과정을 추적한다. 한 작품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다시 쓰이는가. 그 ‘다시 쓰기’는 단순한 문장 수정이 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 변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다른 데 있다. 주변부 텍스트들을 정전의 반열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에 머무르며 문학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이해조의 신소설을 분석할 때, 김남천의 <사랑의 수족관>을 논할 때, 저자는 작품의 미학적 완결성을 따지기보다 그들이 발 딛고 선 역사적 지점을 밝힌다.
그렇다면 이 책은 현재의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K-콘텐츠의 전성시대를 맞아 ‘팩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와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 저자의 문제의식은 더욱 절실하다. 넷플릭스 사극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웹소설이 역사적 소재를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묻지 않는가. 역사를 재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허구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다만 아쉬움도 남는다. 저자는 한국 현대소설의 다양한 ‘경계’를 보여주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통합적 시각이나 이론적 틀은 제시하지 않는다. 각 장이 독립적으로 빛나는 만큼, 전체를 묶는 구심점은 다소 약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힐 만한 가치가 있다. 기존 연구의 틀을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학술적 엄밀함을 잃지 않는 균형감, 텍스트를 세밀하게 읽어내는 분석력,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이 역사와 맺는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 <경계의 텍스트들>은 인문학 연구자에게는 주목할 만한 신간이고,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무거울지라도 권할 만한 책이다.
경계는 분리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다. 저자는 그 경계에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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