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강화의병 30명 발굴

임지연 | jyl@dhnews.co.kr | 기사승인 : 2022-02-05 17: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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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품강탈 관련 일본 기밀보고서. 사진=인천대 제공
금품강탈 관련 일본 기밀보고서. 사진=인천대 제공

[대학저널 임지연 기자] 인천대학교는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강화의병 30명을 발굴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일제침략기 강화의병은 강화 출신 25명과 강화도와 인근 도서지방에서 일본 군경과 의병투쟁을 벌였던 타지 출신 5명을 포함한 30명이다.


인천대에 따르면 정부에서 의병 공적으로 포상을 시작한 1962년 이래 지금까지 강화 출신은 8명에 불과하다. 이번 강화의병 발굴은 기존의 3배가 넘는 의병 유공자를 발굴한 것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이번에 발굴된 의병장과 의병은 김용기(金龍基)・이능권(李能權)・지홍윤(池弘允) 의병장이 이끌었던 의진(義陣:의병부대) 소속의 의병장과 의병이 대부분이다. 강화의병은 뭍에서는 이능권 의진, 바다에서는 김용기·지홍윤 의진이 의병투쟁을 전개했다.


이능권 의병장은 강화 출신으로 광무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헤이그특사 이준(李儁) 일행을 호위해 남대문역에서 열차를 이용, 부산을 거쳐 러시아로 향하는 여객선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결국 이준 특사가 자결하고, 광무황제가 강제 퇴위당했다는 소식에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를 의병의 천국으로 만든 인물이다.


김용기 의병장은 황해도 배천 출신으로 시위대 기병 부교(副校)로 근무 중, 군대가 해산되자 광무황제의 밀지(密旨)를 받고 거의한 박정빈(朴正彬) 의진에서 창의돌격대 총대장이 돼 경기도와 황해도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일으켰다. 1908년 4월부터 10월까지 강화・교동과 인근 도서지방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지홍윤 의병장은 강화 출신으로 일제에 의해 1905년부터 강화진위대가 강화분견대로 축소되고 1907년 8월 군대까지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강화 17면, 신도・시도・장봉도・주문도・아비도・망도・말도 등 도서지방과 황해도 평산・배천・연안군에 이르기까지 김용기 의병장과 맹위를 떨쳤다.


이외에도 의병장 의진에서 활약했지만 아직 포상되지 못한 대표적인 분은 김용기 의진의 금찰장(禁察長) 고재환(高在煥)・소모장(召謀長) 김장석(金長石), 이능권 의진의 참모 김추옥(金秋玉)・여만복(呂萬卜)・유성준(兪成俊)・이호춘(李浩春), 지홍윤 의진의 고부성(高夫成)・김신명(金愼明)・장동섭(張東燮) 등이다. 강화도에서 독자적인 의진을 이끌고 의병투쟁을 벌인 의병장 김태의(金泰宜)・오윤영(吳允榮)・장인선(張仁善) 등도 포함됐다.


유천호 강화군수는 “그동안 강화의병이 많다고 알려졌으나 사료를 발굴, 정리하지 못해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강화 출신 의병뿐만 아니라 3·1독립만세의거, 국내외 광복활동을 했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발굴하고, 특히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岩) 선생을 비롯한 많은 애국지사들에 대한 공적도 제대로 발굴돼 하루빨리 포상이 이뤄지는 것이 곧 강화군민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태룡 독립운동연구소장은 “강화의병뿐만 아니라 3·1독립만세의거, 국내외 반일투쟁에 선두에 섰던 강화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포상신청 해 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것을 하나의 책자로 묶어내면 ‘강화독립운동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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