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복잡한 논술 제시문, 어떻게 읽고 정리할 것인가
길고 복잡한 논술 제시문, 어떻게 읽고 정리할 것인가
  • 백두산 기자
  • 승인 2021.05.1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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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칼럼 - 김정환 로고스논술구술학원 팀장 ]

논술을 시작했을 때 처음 부딪히는 장벽은 빼곡하게 들어찬 제시문(지문)이다. 대입 논술은 주어진 제시문을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단 한 줄도 쓸 수 없다. 그러다보니 문해력이 약한 요즘 수험생에게 줄글의 덩어리는 마주하는 순간부터 부담스럽다. 다만 논술 시험의 구조상 이를 조금 더 전략적으로,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들이 있다. 이러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논제를 의식하면서 읽어라

가뜩이나 숨막히는 제시문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글에 ‘맥락’조차 없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든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다면 한 곳이 막히더라도 앞뒤를 살펴 이해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논술의 제시문은 출제자가 여기저기서 한 장씩 찢어다 ‘제시문 (가)’, ‘제시문 (나)’ 식으로 모아 놓은 것이므로, 해당 부분만 읽어 곧장 그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도 제시문의 이해를 돕는 맥락은 논술의 문제, 즉 ‘논제’에서 추출할 수 있다. 논제란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나)의 현상을 비판하시오”와 같은 지시문을 말한다. 이를 꼼꼼히 살피면 출제자가 특정 제시문을 왜 찢어 왔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위 문제에서 제시문 (가)는 (나)에 나타난 현상을 비판하기 위한 ‘비판의 근거’로 주어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해당 제시문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제시문 (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이, (나)에 인공지능(AI)이 나왔다고 하자.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가 현대의 인공지능을 알았을 리 없다. 그런데 출제자가 둘을 묶어 문제로 출제했다면 수험생은 ‘(가)는 인공지능의 한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깔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을 읽어야 한다. 이처럼 맥락이 부여될 때 그의 심오한 문장도 스르르 풀리기 시작한다.

논술 제시문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논제를 독해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같은 고등어지만 조리법에 따라 구이도 되고 조림도 되듯이, 제아무리 아리스토텔레스라 해도 일단 논술의 제시문이 된 이상 한 마리 고등어일 뿐이다. 그러므로 수험생은 반드시 출제자의 의도가 담긴 논제를 먼저 읽고 나서 제시문을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논제는 제시문을 이해하는 열쇠다.

세 번 이상 반복해 읽어라

논제를 의식하더라도 내용 자체가 생소해 제시문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논술에는 평소 학생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언어학, 생태주의 등의 주제도 전방위로 튀어 나온다. 그런 면에서는 평소 다방면의 독서 습관을 갖고 있던 수험생이 유리하다. 만약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논술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다뤘던 주제들이라도 꾸준히 정리해 둬야 시험장에서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당장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제시문을 반복해 읽는 것이 최선이다. 평소 독서량이 많지 않은 대다수 수험생이 학술적 텍스트인 제시문을 단번에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논제를 꼼꼼히 분석한 후, 각 제시문을 최소 세 번 이상 읽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접하는 것이 좋다. 수능 국어영역과 달리 속독의 압박에 매일 필요는 없다.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 없듯, 아무리 급해도 제시문의 정확한 이해를 건너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처음부터 글에 밑줄이나 동그라미‧별표 등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은 왠지 중요할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논술은 파국의 길로 접어든다. 제시문을 다시 읽을 때 그 표식에 신경이 쏠려 전체적인 흐름과 중요 내용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밑줄이나 표시는 제시문의 분위기를 대략적으로라도 감지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회독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 내용을 개념으로 정리

제시문에 대한 이해 다음으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읽은 제시문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의 문제다. 초심자는 이 방법을 몰라 제시문의 문장을 답안지에 있는 그대로 옮겨 적기도 한다. 이는 모든 대학에서 입을 모아 경고하는 감점 사유다. 이른바 ‘복붙’은 학생이 제시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표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제시문을 이해했다면 이 제시문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논술을 집 짓는 일로 비유하자면 방금 읽고 이해한 제시문은 흙더미에 해당한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흙을 다듬고 눌러 벽돌을 만들어야 하듯이, 답안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시문의 산만한 내용을 단단한 블록으로 가공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벽돌이 바로 ‘개념’이다. 즉 제시문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이를 몇 개의 개념들로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화 이후 고소득층의 소득은 증가했지만 중산층이 몰락했고 저소득층의 소득은 감소했다’는 내용은 ‘세계화’, ‘빈부격차 심화’라는 두 개의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때 개념은 ‘세계화’처럼 제시문에 명시적으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빈부격차 심화’처럼 내용을 잘 이해해 학생이 제시한 것일 수도 있다. 개념화는 그 자체가 수험생의 역량을 드러내는 과정이기에 적절한 개념 중심으로 답안을 구성할 경우 득점에 매우 유리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논술에서 제시문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첫째, 논제를 의식하면서 제시문을 읽어야 하고 둘째, 제시문을 반복해 읽어야 하며 셋째, 읽은 제시문의 내용을 개념으로 정리해야 한다. 논술 초심자는 방대한 제시문에 압도되기 쉽지만, 제시문은 결국 답안을 적어 내기 위해 활용될 ‘재료’에 불과하다. 그러니 학생들은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제시문을 적극적으로 대하는 것이 좋다.

논술은 대학 입시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손쉬운 요령 중심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지만 필요 이상 어렵게 여길 필요도 없다. 기본적인 사고훈련과 함께 실전용 접근법을 익히면 누구나 합격에 필요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대학이든 대입 논술의 출발은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답안에 활용하는 것이다. 제시문 활용법을 익혀, 내년 이맘때에는 코로나 없는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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