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INSIGHT]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 목소리 높다
[대학 INSIGHT]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 목소리 높다
  • 이승환 기자
  • 승인 2021.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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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잣대’로 인문사회 연구 지원?"
인문사회계, 학문 연구 특성 무시한 비현실적 법안 성토
시행령 통한 보완보다 ‘인문사회 적용 제외’ 담은 법 개정 필요
지난해 8월 열린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안 공청회 모습. 사진=과기정통부 제공

[대학저널 이승환 기자] 국가 R&D(연구·개발) 사업 범부처 공통규범으로 지난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대한 개정 목소리가 높다.
대학의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은 인문사회 연구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법안이라며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시행되고 있는 연구개발혁신법이 오히려 인문학 연구에 막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다보니 법 시행 반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시행령이나 행정규칙 등을 보완해 문제를 풀겠다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적용을 제외하는 개정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인문사회계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공계 ‘잣대’로 통합 관리에만 초점
인문사회 학술연구 고유성 반영 안돼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은 정부 부처별로 다르게 운영되는 국가연구개발 관련 규정을 통합, 체계화해 자율적이고 책임있는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법률이다.

부처마다 R&D 관련 규정이 달라 연구현장의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지적에 따라 국가 연구개발 관리규정을 하나로 합친 것이 골자다.

하지만 규정을 하나로 통일해 관리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법 제정 취지와 달리 연구개발혁신법은 시행 반년이 다된 현재까지 인문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인문사회 분야 관계자들은 법 제정과 시행 과정이 교육부와 국회 교육위원회, 인문사회 연구자 등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을 뿐 아니라, 국가 R&D 사업의 통합적 관리에만 초점이 맞춰지면서 인문사회 학술연구의 고유성이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 35개 대학중점연구소와 23개 인문사회연구소 협의체인 전국대학중점연구소협의회는 지난 3월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학문의 다양성과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획일적인 국가연구지원은 한국 학문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구노트 작성 의무화, 타 기관 소속 학생연구원에게 학생연구비 지급불가, 과제 종료 후 연구비 사용불가 등 연구개발혁신법이 요구하는 내용은 인문사회 분야 연구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법안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연구개발혁신법은 국가경쟁력 발전에 반하는 법이므로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한 “연구개발혁신법으로 인해 전체 27.2조 R&D 예산의 약 1%에 불과한 인문사회 분야 학술지원 예산이 과학기술 분야에 종속돼 연구 자율성과 창의성이 크게 저해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혁신법은 법령 등의 제·개정 시 과기정통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견 수렴 절차 없는 시행...인문사회 연구 현장 혼란

현장의 의견 수렴없이 연구개발혁신법이 시행되면서 전국 대학의 인문사회 연구소들도 혼란을 겪고 있다.

대학중점연구소협의회에 따르면 연구개발혁신법 실행 관련 공문이 일선 대학연구소에 2월 중순에야 전달됐고, 이로 인해 많은 대학연구소가 혁신법 통과 이전 기준으로 지난 1월과 2월에 이미 집행한 연구비 반환으로 부당한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강원도의 한 대학 연구소는 다른 대학 학생인건비 소급 환수 문제를 겪고 있다. 다른 대학 소속 학생은 인건비를 40만원으로 지급하라는 통보를 올해 2월에야 받아 이미 지급 완료된 1월 인건비 70만원에서 30만원은 반환하도록 조치를 받은 것이다. 해당 연구소는 업무를 차질 없이 오랫동안 담당한 연구보조원에 대해 갑자기 40만원 이하로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연구책임자 입장에서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공계 연구 활동비 운영방식을 인문사회 계열에 적용해 연구비 사용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서울 소재 대학의 한 연구소는 해외지역 연구를 주로 진행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현지조사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하지만 (연구개발혁신법에서) 연구 활동비의 80% 이상을 사용해야 연구수당이 지급될 수 있다는 합리적이지 못한 강제 조항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법 개정 보단 시행령 통한 보완 의견
인문사회계 “하위법령 통한 미봉책으론 근본 해결 안돼”

국회에서도 인문사회계의 연구개발혁신법 개정 요구에 맞춰 지난해 유기홍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올해 2월 이용빈 의원도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사업 등에 대한 적용 배제를 내용으로 한 개정 법률안을 제출한 상태다. 현재 이 법안들은 정부 부처간 쟁점법안으로 지정돼 조정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개발혁신법의 획일적인 잣대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인문사회 분야를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 줄곧 이어짐에 따라 과기정통부도 인문사회 분야와 소통을 통해 특성에 맞는 연구 지원·관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인문사회 연구현장 간담회를 잇달아 마련하고 있다.

지난 3~4월에는 권역별 인문대·사회과학대 학장이 참석하는 권역별 현장방문 간담회를 개최했고 5월에는 인문한국(HK)사업‧한국사회과학연구(SSK)사업 연구책임자 대표, 대학중점연구소협의회 이사교 연구책임자 등이 참석하는 인문사회 연구사업 책임자 간담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정통부는 인문사회계에서 제기한 연구개발혁신법 제정과 시행 과정에서 절차 문제에 관해 간담회를 통한 의견 수렴으로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연구개발혁신법을 소급적용하면서 생기는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범부처 별도 기구인 연구자권익보호위원회 재검토를 통한 구제 절차 신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노트 작성도 최종보고서로 대체하고, 다른 대학 학생인건비를 일반 인건비로 대체하고 논문게재료 등을 연구기간 종료 후에도 직접비에서 지불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분야별로 다르게 적용해야 할 사항은 하위법령이나 행정규칙 제정, 부처 협의로 개선하고 법 전체에 대한 적용 제외보다는 각 사업별 특성에 맞게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론적인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간담회에 참석한 강성호 전국대학중점연구소협의회 회장은 “과기정통부가 연구개발혁신법 시행에 따른 문제 제기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다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간담회를 마련한 것은 작은 성과라 생각한다”면서도 “법의 근본 문제점은 놔둔 채 하위법령인 시행령이나 규정을 통해 보완하려는 것은 국가 R&D 사업의 체계적 추진·관리를 위해 인문사회 연구에도 적용한다는 연구개발혁신법 자체와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이어 “인문사회 분야를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이 모순이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문사회 분야 지원 확대 위한 전환점 삼아야"

한편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개발혁신법 시행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법 개정을 통해 개선함과 동시에 이를 연구제도 개선과 정부 R&D 활동 참여 확대, 연구 지원 강화 등 인문사회 분야 지원 확대를 위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도 이를 의식한 듯 간담회에서 “탄소중립 실현과 디지털 전환 등 사회변화를 동반하는 국가적 어젠다 대응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등장에 인문사회의 중요성과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며 “국가적 정책‧제도 수립 활동과 사회변화 대응을 위한 논의에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의 참여와 관련 연구활동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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