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화의 회화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함의로 가득 차 있다.
‘함의(含意)’란 드러나지 않은 의미,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사유의 층이다. 이강화의 작품은 바로 그 ‘숨겨진 층’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그는 사물과 자연, 빛과 바람, 낡은 가방과 들꽃 위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존재의 목소리를 새긴다.
1. ‘함의’의 미학
이강화의 회화가 현대미학적 의미에서 독창적인 지점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사물의 묘사나 감성의 서정을 넘어 ‘사라지는 것을 남기는 회화’이기 때문이다. 그의 화면은 물결과 풀잎, 바람과 빛, 금속의 녹과 가죽의 흠집 같은 ‘덧없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덧없음 속에서 오히려 존재의 확실함이 드러난다.
현대미학에서 ‘함의’는 단순한 숨은 뜻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현현(顯現)”이라 했다. 이강화는 바로 그 개념을 회화적으로 구현한다. 그의 빛은 단순한 시각효과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의 바람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세계가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강화의 ‘빛의 결’은 감각의 표면이 아니라 존재론적 흔적이다. 그의 ‘바람의 결’은 사물과 시간, 존재와 소멸이 서로를 통과하는 현상학적 사건이다.
2. 현대미학적 사조 — ‘현상 회화(Phenomenological Painting)’
이강화의 작업은 기존의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혹은 사진적 리얼리즘의 범주로 포섭될 수 없다.
그의 회화는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대상이 스스로 현상하는 방식에 대한 사유다. 이는 서구 현대철학에서 ‘현상학(phenomenology)’이라 불린 사유 체계와 직접 맞닿는다.
하이데거는 “예술은 존재를 드러내는 사건”이라 했고, 메를로퐁티는 “보는 행위는 세계가 우리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했다.
이강화의 화면은 바로 그 철학의 시각적 번역이다.
물 위에 드리운 나뭇가지, 바람에 흩어진 풀잎, 빛에 반사된 연못의 표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한 순간, 즉 ‘존재의 현상화’다. 그의 그림은 ‘보는 자’의 시선이 아니라, ‘보여지는 세계’의 자기 표현으로 작동한다.
이 강화를 중심으로 한 이러한 회화적 태도는 최근 동시대 한국 회화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경향과도 맞닿는다. 기존의 재현 회화가 아닌, ‘사물의 존재 방식 자체를 시각화하는 회화’, 즉 ‘현상 회화(Phenomenological Painting)’라 부를 만한 새로운 사조다. 그의 회화는 감정의 표현도, 풍경의 재현도 아닌 존재 그 자체의 드러남이다.
3. 동양의 사유, 현대의 언어
이강화의 회화에는 동양의 철학적 사유가 깊게 배어 있다. 특히 그의 세계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는 ‘무상(無常)’과 ‘기(氣)’이다. 무상은 사라짐을, 기는 그 사라짐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말한다.
그의 화면에서 바람은 사물의 경계를 흐리고, 물은 하늘을 품는다. 철제 가방 위에서 꽃이 피고, 쇠붙이의 녹이 시간의 색으로 번진다. 이 모든 것은 동양 사유에서 말하는 ‘상생(相生)’과 ‘순환’의 원리다. 하지만 이강화의 회화는 단순히 전통적 동양정신의 복원이 아니다. 그는 이 사유를 현대적 물질성, 즉 인공과 자연이 공존하는 물질 세계 속으로 가져온다.
쇠, 가죽, 플라스틱 같은 산업적 잔재 위에 자연의 생명(꽃, 풀, 바람)을 덧입힌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 기술과 생명, 유기와 무기의 경계를 해체하는 시도이자, 오늘날 생태적 감수성과 존재론적 사유가 교차하는 포스트휴먼(Post-human)적 미학으로도 읽힌다.
4. ‘결(結)’은 시간과 존재의 접힘
이번 전시의 제목인 ‘빛의 결, 바람의 결’에서 ‘결’은 단순히 질감(texture)이 아니다.
‘결’은 시간이 지나며 남긴 방향의 흔적, 그리고 존재가 흔들리며 만들어낸 리듬이다. 그의 회화에서 결은 곧 시간의 물리적 언어다.
빛의 결은 순간의 흔적이다. 바람의 결은 존재의 흔들림이다. 그 결들이 쌓여 화면은 하나의 시간적 지층이 된다.
이강화는 이 결을 통해 ‘존재의 흔적’을 기록한다. 그의 회화는 사진처럼 한순간을 포착하지 않는다.
대신 ‘흐름 속에서 존재가 어떻게 남는가’를 묻는다. 이때 그의 작업은 시간의 축적을 시각화하는, 존재의 기록 회화로 전환된다. 강화도 작업실 뒷 산책로를 걸으며 보았던 계절과 풍경들이 시각적으로 멈춰진 공간 같지만 코끝으로 맡을수 있는 흙과 나무 꽃내음 하물며 구름과 하늘 빛 조차도 내음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숨길 수 없다. 그러한 일상의 체험이 기억에 저장되고 작품속에 ‘함의’를 찾기를 지도를 그리고 있다.
5. 미학적 함의 : 사물의 언어
이강화의 작품이 지닌 함의(含意)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읽힌다.
1) 존재의 함의
그의 회화는 존재를 ‘사물의 표면’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으로 본다.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다른 결로 남는다. 빛과 바람은 존재의 언어이며, 사물은 그 언어의 매개다.
2) 시간의 함의
그의 작업은 한순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래된 시간의 퇴적층이다. 회화는 기억의 표면이며,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현존하는 공간이다. 이는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과 맞닿는다 - 시간은 흐르지 않고, 쌓인다.
3) 관계의 함의
인간, 자연, 사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한다. 이 관계의 미학은 동양의 ‘연기(緣起)’ 사상과 통한다. 모든 것은 관계로 존재하며, 관계가 끊기면 존재도 사라진다. 그의 회화는 관계의 흔적, 즉 세계의 연결선을 시각화한다.
6. 새 사조 : ‘관계적 존재론 회화(Relational Ontological Painting)’
이강화의 회화는 단순히 개인적 감수성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관계를 드러내는 회화적 사유 체계다. 따라서 그는 동시대 미술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흐름, 즉 ‘관계적 존재론 회화(Relational Ontological Painting)’라는 사조를 제시한다.
7. ‘함의’로 다시 읽는 회화
이강화의 회화는 현대미학이 잃어버린 질문, 즉 ‘예술은 왜 존재를 증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의 화면은 말없이 사유한다. 빛과 바람, 쇠와 가죽, 흙과 꽃은 그 자체로 언어가 된다. 그 언어의 결 속에 담긴 뜻, 그것이 바로 ‘이강화의 함의’다.
그의 작업은 이제 단순한 회화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기억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 위에, 관객의 시선이 닿는 순간 — 사라진 것들은 다시 존재하기 시작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을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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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성아트센터 제공 |
이강화의 ‘함의’는 현대미학의 새로운 전환점이다.
그의 회화는 동양의 무상과 현대철학의 현상학, 그리고 존재론적 사유가 결합된 관계적 존재론 회화로, 빛과 바람, 사물과 시간의 관계 속에서 사라짐이 곧 존재임을 증명하는 미학적 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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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성아트센터 제공 |
*참고
‘함의(含意, Implication)’는
含(머금을 함) — ‘품다’, ‘머금다’, ‘안에 담다’
意(뜻 의) — ‘의미’, ‘생각’, ‘의도’의 뜻
즉, ‘뜻을 품다’, ‘의미를 내포하다’라는 의미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는 상태.
Implication : 논리적·철학적 맥락에서 사용. 어떤 현상이나 발언이 필연적으로 포함하거나 전제하는 의미
글 금보성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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