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한 아들을 둔 김은영 씨(47). 대학교 신입생 아들과 올해 고3 수험생 딸을 둔 부모이기에 인터뷰에 앞서 ‘대학 등록금’에 대해 학부모와 많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사회적 이슈인 대학 등록금 문제를 얘기하다보니 입시 정책, 사교육 문제, 스펙 열풍, 양극화 구조 등 다른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김 씨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주(主)는 부모의 자녀 코치에 대한 내용인데 굉장히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김 씨의 태도를 봤을 때 문득 기자의 궁금증이 발동했다. 알고 보니 김 씨는 학창 시절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었다고 한다. 당시 집안 형편상 돈을 벌어야 되는 상황이어서 무작정 언론사 시험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 씨는 왜 언론인이 되고 싶어했을까?
김 씨는 “(기자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기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원 강사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개인 과외를 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김 씨에 따르면 공교롭게도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 역시 장래 희망이 언론인이다. 전공으로 신문방송학과가 아닌 문화인류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남다르다. 단순히 ‘언론=신문방송학과’를 떠올리는데 신방과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시각에서 사회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을 넓게 보면 정치학, 사회학의 한 속성을 지녔고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신방과의 시각이 아닌 다른 잣대로 사회를 분석할 수 있어서다. 이 같이 김 씨의 아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려 하는 것도 어린 시절 아들의 자녀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다양한 교육 환경에 노출시켜라
김 씨는 현장 체험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녀에게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학습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동심리와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아이들에게 단순한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보다는 신체활동을 통해 두뇌를 발달시키는 게 훨씬 낫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때부터 현장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보편화 되지 않아 체험학습이 가능한 곳을 쉽게 찾지 못했어요. 주위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현장 체험학습이 가능한 곳에 직접 전화도 하면서 박물관, 문화센터, 공연장, 과학관, 역사탐방, 미술활동, 음악활동, 축구교실 등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시설들을 찾아 다녔어요.” 체험 활동은 창의성을 길러주고 학습에 흥미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아이들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김 씨의 아들이 중고등학교로 점차 올라가면서 밖에서 보내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공부해야 되는 과목이 늘어나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엄마나 아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었다. 대신 김 씨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며 아이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씨의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성적표에 등수와 전교 석차가 나왔다. 김 씨의 얘기로는 처음 성적표를 받아본 아들은 꽤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기에 상위권 실력이었지만 초등학교 때보다는 등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공부해도 성적이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지 않았다. 김 씨의 아들은 공부보다는 컴퓨터 게임에 더 빠져들었고 김 씨는 그런 아들을 보면서 충격 요법을 주기로 결정했다.
“(제가 보기엔) 학습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수소문해 최상위권 학생들이 다니는 대치동의 모 학원에 입학 시험을 치르도록 했죠.” 김 씨는 아들의 입학 시험 점수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학원 측에서도 이 정도 성적으로는 입학하기 힘들다는 설명을 했다. 김 씨의 시나리오대로 아들은 이 사건이 자극이 돼 다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해’ 같은 잔소리가 아닌 아이의 승부욕을 자극해 스스로 변화되도록 모티브(motive:동기)를 제공한 셈이다.
자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라
자녀에게 아빠와 엄마는 똑같은 부모다. 하지만 가정의 형편, 부모의 성향, 자녀의 생각에 따라 아빠와 엄마의 ‘역할’은 구분될 수 있다. 김 씨는 자신의 경우 “자녀 교육 시 아빠와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달랐다”고 말했다. 요즘 ‘소통(疏通)’이 대세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들과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다. 아들에겐 잔소리가 별로 효과가 없어 엄마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아들과 대화가 훨씬 잘 통하는 아빠를 통해 얘기하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죠.”
요즘 어린 자녀를 둔 가정마다 고민거리인 ‘게임’ 문제를 예로 들었다. 엄마의 얘기는 도대체 약발이 안 먹히니 아빠의 힘을 빌리기로 한 것. 아빠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시내 곳곳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대화를 했다. 이후 아들은 앞으로 엄마가 정해주는 시각까지만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아빠와의 대화가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보내면서 아들은 아빠와 더 많이 대화를 나눴고 문제가 발생하면 아빠는 해결책을 곧잘 제시해줬다. 김 씨는 엄마의 입장에서 해 줄 수 있는 역할을 다 하면서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렸다.
“사실 처음부터 아들과 대화가 안 통한 것은 아니었어요. 중학교 시절 학교에 다녀왔는데 학교 엄마들이 아들에 관한 얘기를 했어요. 이성 친구에 관한 내용이었죠.” 집에 돌아온 후 아들의 입장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따지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 남의 얘기만 듣고 와서 자식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시기의 자녀들은 학업 스트레스, 또래 간 갈등, 이성 친구 문제 등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아 쉽게 좌절감이나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김 씨의 아들도 엄마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경우다. “이 사건으로 아들은 크게 상처를 받았고 닫힌 아들의 마음을 풀기 위해 계속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이제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고 학창 시절 닫힌 마음에 대한 오해도 풀렸어요.” 어쩌면 쉬이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했던 시간이 오래 지속된 점은 부모나 자식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받은 상처가 너무 컸다. 김 씨는 “자녀에게 꾸지람을 하기보다는 자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 뒤 야단을 쳐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자녀의 목표와 부모의 목표는 엄연히 다른 것
대한민국의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상당히 높다. 이런 까닭에 자녀의 적성이나 희망을 고려치 않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하니까 무조건 법대나 의대로 가야해’, ‘비싼 과외를 시켰으니까 이 정도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겠지’, ‘부모 말대로 해야 인생이 행복해.’ 이렇게 생각하는 대한민국 부모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의 삶은 별개이므로 목표점 역시 상이하다. 부모는 인생의 선배로서, 자녀의 조력자로서 방향이나 의견 제시 정도를 하는 데 그쳐야 한다. 만약 부모가 방향 제시를 했는데 아이가 적응 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것은 아이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저 역시 다른 부모들이 바라는 것처럼 아들이 평범하고 순탄한 길을 가는 걸 원했죠. 인문계니까 경영학과나 법대 정도 나와서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안정된 직장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들이 고3 때 학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크게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어요.” 당시 아들이 경제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아빠도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언론인이 되겠다’는 말에 당황했다. “제가 비록 교직에 있는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아이의 진로를 결정할 때, 이게 아이의 목표인지 부모의 목표인지 정확히 따져봐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김 씨는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중요한 사안인 진로 문제에 대해서 아들과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진로 문제를 얘기하면서 평소 김 씨와 아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예컨대 아들이 자신을 향해 “행동은 보수적이면서 말은 진보적인 말투로 얘기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처음에 아들의 생각이 잘못된 거라고 얘기했지만 아들의 지적이 일견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제 김 씨도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진짜 언론인이 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부모로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라고 봤다. “자녀의 목표 설정이 중요한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대화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억지로 시키려 하면 오히려 아이의 꿈도, 부모 사이도 둘다 멀어질지 몰라요. 행여 이렇게 해서 내려진 결론이 부모 입장에서 다소 실망스럽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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