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박사는 1969년 한국에 국제 수준의 과학기술대학원 필요성을 느껴 대학원 중심의 이공계 교육기관 구상을 담은 터만보고서를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제출했다.
정 박사의 이 보고서는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KAIS)을 설립하는 데 계기가 됐고, 정 박사는 연구실 디자인부터 교수진 확보, 미국으로부터의 600만 달러 교육 차관 획득 등 헌신적으로 노력한 공로가 인정됐다.
정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23세가 되던 해인 1963년 미시간주립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곧이어 미국 플로리대의 조교수로 임명된 후 프리스턴대 핵융합연구소, MIT 핵공학과 연구 교수를 거쳐 뉴욕공과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로 임명돼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1971년 2월 16일 한국과학원이 설립되자 정 박사는 31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 부원장 겸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한국이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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