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고3 수험생을 둔 최순아(45) 씨는 딸과 주말부부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경기외고를 다니는 최 씨의 딸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최 씨에 따르면 딸은 중학교를 졸업한 경기외고 선배들이 모교(중학교) 대상 입학설명회를 가진 이후부터 경기외고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 같이 경기외고 홈페이지를 방문해 새로운 소식이 있는지 확인하고 책상에도 ‘경기외고 O기’라고 써놓으며 경기외고 입학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진학 전에 경기외고 교가를 외워 부르는 게 취미가 됐을 정도다.
최 씨는 딸처럼 외고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교육만큼은 누구보다 관심이 높다. 신문을 읽을 때도 ‘교육 섹션’을 가장 먼저 찾는다. 교육 칼럼과 기고를 보면서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을 살펴본다. 신문에 실린 학생이나 선생님 인터뷰를 읽을 때도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사항은 머릿속에 입력해 놓는다. 아울러 최 씨가 사는 분당 지역은 서울 강남, 목동, 중계 지역과 함께 대한민국 교육특구로도 잘 알려진 곳이다. 분당이 위치한 경기남부지역은 용인외고, 성남외고, 경기외고 등 특목고가 많아 교육열이 높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최 씨와 같이 교육에 관심 많은 다른 학부모들과도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최신 정보들을 얻는다.
한편 최 씨는 대학 졸업 직후 강남의 사설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수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학원 강사 시절 가방만 들고 학원에 다니는 수동적인 학생들을 보면서 제 아이만큼은 직접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죠. 학원비만 주고 학원에 맡기면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꽤 많았었죠.”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엄마가 자녀의 모든 교육을 책임질 수 없는 게 우리 교육의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자녀 양육비, 치열한 경쟁 환경, 사교육 만능주의 등 현실적인 문제 탓이 컸다.
교육특구인 분당에 거주, 특목고에 다니는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 사교육 일번지 강남에서의 수학 강사 경력이라는 묘한 조합 속에서 최 씨의 부모코칭 기술은 어떤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제나 자녀 편에 서야 한다
최 씨의 자녀교육 철칙 중 하나는 ‘항상 자녀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딸이 저에게 어떤 불만을 얘기하면 항상 맞장구를 쳐줘요. 예컨대 딸이 ‘선생님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라고 하면 저도 같이 욕을 하죠(웃음). 아니 더 흥분하고 오버액션도 서슴지 않아요.” 보통 자녀들은 집에 돌아와 선생님과의 문제를 얘기하며 부모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상당수 부모들은 “네가 잘하면 선생님이 그러시겠어”라며 아이들을 나무란다.
하지만 최 씨의 생각은 정반대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조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최 씨는 “늘 딸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주다보면 나중에 딸이 자신의 잘못한 점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엄마랑 얘기하면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나도 100% 잘한 것 같지는 않아. 선생님 때문에 속이 상했지만 나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앞으로 더 조심하는 기회로 삼아야겠어!” 자녀 편에서 얘기할 경우 보통 이런 식으로 대화가 마무리된다.
한편 최 씨는 “감정이 예민한 사춘기 자녀들과 얘기할 때 부모가 공감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경청하는 것 이상으로 말과 몸짓을 통해 자녀의 말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 좋다는 얘기다. 예컨대 “정말?”, “그랬구나”라고 반응을 보이며 자녀의 기분에 동조하면 자녀들은 부모에게 더 많은 감정 표현을 하게 된다. 부모를 내 편으로 인식함으로써 자녀와 부모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훌륭한 부모의 자격으로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학업 스트레스로 고민이 많은 십대들은 ‘부모와의 따뜻한 대화’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대화 상대자로 찾는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부모’가 아니다. 자녀는 부모와 대화하고 싶어도 막상 대화하기를 꺼려한다. 해답은 간단하다. 최 씨의 말대로 “부모는 언제나 자녀 편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공감의 제스처(gesture)를 적극 표현하는 것이다.
문제해결력을 길러줘라
최 씨는 “딸에게‘ 홀로서기’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씨의 바람(?)대로 딸이 외고를 갔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딸이 혼자 떨어져 생활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학업 스트레스를 잘 견딜수 있을까’, ‘혼자서 어려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친구와 잘 사귈 수 있을까’ 등 여러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반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기숙사 생활이 딸에게 큰 보탬이 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딸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생활을 통해 ‘조율하는 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친구들과 다퉜을 때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학교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터득했어요.” 최 씨는 아이들의 자립성을 키워 문제해결력을 길러야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일상 생활에서의 문제해결력을 키우면 학습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난다. 문제해결력은 스스로 문제를 파악해 원인을 분석한 후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다. 학습자 본인이 목표를 정하고 학습을 수행해 학습결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과정인 자기주도학습과 맥을 같이 한다. 최 씨의 딸도 특별히 부모가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계획을 세우고 척척 해낸다. 교내·외에서 실시하는 각종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부모가 따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서로 협의하거나 신문과 책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알아서 찾는다. 다만 최 씨는 “아이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거나 도움을 호소할 때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자녀들은 아직 사회 경험과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하므로 부모의 조언이나 적절한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빠와의 대화를 많이 하는 것도 자녀의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사회 경험이 많은 아빠와 자주 대화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아빠의 문제해결력을 자연스럽게 본받을 수 있다는 것. 현재 고3인 딸은 학과 선택 문제와 관련해 아빠와 상담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아빠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딸이 앞으로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딸이 ‘학과 결정’, ‘진로 선택’이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빠와의 대화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제한적이되 전략적인 사교육이 필요
대한민국 학부모들에게 ‘교육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특히 공교육과 사교육과 관련된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내 자식은 좋은 대학에 보내야한다는 학부모들의 기대치가 워낙 높은 만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최 씨는 ‘제한적인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사교육은 전략적·선택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 딸은 가능한 학교 교육에 충실하게 하고 스스로 학습을 해결할 수 있게 했어요. 학교 교육으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딸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만 사교육을 시켰어요.”
최 씨는 딸이 무작정 학원에 다닐 때를 빗대어 ‘학습의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 학교 숙제도 제대로 못 하고 학원 수업도 잘 따라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어요.” 이후 최 씨와 딸은 상의 끝에 큰 결심을 하고 학원을 끊었다. 처음에는 솔직히 불안했다. 그런데 학원을 안 가게 되니까 딸은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웠고 학원에 다니지 않은 과목까지 신경을 더 쓰게 되면서 오히려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최 씨는 무턱대고 사교육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딸이 고3 첫 모의고사에서 언어 영역 성적이 많이 떨어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주말을 이용해 언어학원에 다니도록 배려했다. 또한 UN이나 Google 같은 글로벌 조직(기업)에서 일하는 게 꿈인 딸을 위해 중국어 과외도 시키고 있다. 물론 딸이 원해서 사교육의 힘을 빌리고 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막상 학원에 보내면서도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다시 또 고민하는 게 부모의 심정이다. “‘부모는 아이의 최고 선생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내 아이의 재능과 적성을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예요. 아이의 실력을 높이고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사교육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바로 부모의 역할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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