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7시다. 장례미사는 24일 오전 9시, 서울시 중구 명동성당에서 진행되고 영결식은 같은 날 김포대 교내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목현동 용인천주교 공원묘지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고 있다.
고인은 1919년 서울 태생으로 일본 큐슈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해방 후 국토분단과 사회혼란의 격동기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전쟁 등 민족 시련기에 화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고 등의 경제 혼란을 수습하는 데 이바지 했다. 1960년대부터 서울은행장, 한국상업은행장, 한일은행장, 서울신탁은행장, 금융통화운영위원을 역임하며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 시책에 부응함으로써 정부의 산업금융 육성과 물가안정 정책에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서울신탁은행장 시절 고인은 당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적극 동참, 경부고속도로 관문인 '남산 제1호 터널'을 개발신탁자금을 투자·완공했다. 이어 북악터널과 언양·울산 간 고속도로 건설도 출자, 완공했다. 1979년부터 3년 간 정부의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정부의 통화정책과 외환정책을 수립하는 금융전문가이자 실물금융 경제의 경륜가로서 국가 통화정책 발전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고인은 평생을 두고 2개의 소원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해왔다. 하나는 육영사업을 일으켜 이 땅의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문화사업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이었다.
그 꿈의 하나로 먼저 1968년 재단법인 국제문화재단을 설립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문화사업에 매진했다. 사재(私財)를 출연, 현재까지 한국문화 관련 도서 전 34권을 국문·영문·일문으로 발간해 세계 각국의 유명대학 도서관과 한국학연구소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이어 고인은 육영사업의 뜻을 펼쳐 1986년 학교법인 통진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수도권 서북부에 위치한 김포시에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추진, 1996년 김포대를 설립했다. 이 같은 조국 근대화와 문화사업에 기여한 헌신적인 노력과 애국심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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