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일산에 사는 임경희(47) 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남성 재직자가 많은 대기업에서 과장을 끝으로 11년의 직장 생활을 접었다. 임 씨에 따르면 당시 홍보팀에서 근무한 여직원 가운데 해당 부서에서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과장까지 올라간 케이스는 그가 처음이다. 하지만 임 씨는 야근이 너무 잦고 업무량도 엄청나게 많아진데다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퇴직 이후 전업주부로만 생활해 온 임 씨는 아이들 교육에만 전념했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겼던 일은 ‘TV 안보기’였다. “집 안에 아이와 같이 있으면 TV를 켜지 않아요. 뉴스나 드라마 같은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는데 별 불편함은 못 느껴요.” 임 씨가 이런 환경을 만든 이유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큰 딸이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휴대전화를 사 줬어요. 어느 날 집에 휴대전화를 놓고 간 적이 있었죠. 분명히 수업 시간인데 친구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오는 게 아니겠어요? 확인해보니 별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어요. 지금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이의 학업 집중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서 딸 아이와 상의한 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죠. 수능이 끝난 이후로는 바로 스마트폰을 사줬어요.”
임 씨의 첫째 딸은 올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고 둘째는 중학교 2학년으로 반에서 상위권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큰 딸은 고3 때 AP(Advanced Placement: 대학과목선이수제)협회 부총장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 권유 편지를 받았고, 학업능력이 우수한 것을 인정받아 경기도교육감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무엇을 하든지 흠뻑 빠질 정도로 노력하라’고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임 씨의 자녀 교육법을 들어봤다.
몰입의 즐거움 키워줘라!
똑같은 공부를 하는데 A학생은 30분이 걸리고 B학생은 2시간이 걸린다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임 씨는 이를 두고 얼마나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임 씨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행복한 공부가 되기 위해서는 몰입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된다고 말한다.
“저는 공부에 앞서 독서와 피아노를 통해 아이가 내면의 세계까지 흠뻑 빠져보는 경험을 하도록 했어요. 이런 경험을 갖게 되면 아이들이 공부에도 남다른 희열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제 경험에 비춰보면 아이가 평소 몰입하면서 느꼈던 감정 상태는 공부하는 과정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어떤 과제든지 건성으로 하지 않는 공부습관, 깊게 파고드는 학구열로 나타난 것 같아요.”
임 씨의 큰 딸은 7살 때부터 독서에 깊은 흥미를 나타냈다. 1주일에 15권은 기본이고 20~25권 정도는 거뜬히 읽었다는 것. 주로 시립도서관이나 아파트부녀회가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어봤다. 임 씨는 아이에게 책의 종류나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책 위주로 읽어야 한다고 전혀 강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아이가 손길가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책읽기에 몰두하는 상태를 중요시했다.
이는 ‘몰입의 즐거움’을 키워주려는 임 씨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됐다. “어린 나이에 책을 열심히 읽으면 지식적인 측면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독서에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 행복한 감정을 느껴보라는 의도가 강했어요. 몰입 상태를 경험하면서 내적인 보상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죠.”
어려서부터 형성된 딸의 이런 습관은 학년이 올라가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볼 때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나타났다. ‘몰입 이론’의 창시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주위의 모든 잡념, 방해물들을 차단하고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자신의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미하이 교수는 몰입을 하게 돼 얻은 기술, 지식, 정보 등으로 인해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놀아도 몰입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몰입하지 않으면 행복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임 씨의 큰 딸이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면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몰입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자라다오!
임 씨는 아이에게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성장해 줄 것을 주문했다. 르네상스적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성과 감성을 통합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줄 아는 거다. 이를 위해 비교적 어린 나이의 딸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우게 했다. 아이를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거나 폼 나게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융통성 있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돼야 한다는 그의 교육 철학 때문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량도 많아지고 어느 순간 자기만의 탈출구가 필요할 때가 반드시 오게 돼 있죠. 이럴 때 악기를 잘 다루거나 음악을 친숙하게 듣고 해석하는 능력이 있으면 힘든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또 임 씨는 부차적으로 음악과 학업이 일정 부분 상관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이란 건 어떻게 보면 대단한 엄밀성을 요구하는 분야예요. 저희 딸이 피아노를 쳤으니까 이것을 예로 들어볼까요. 피아노 연주는 악보를 보면서 건반을 통해 자기 손으로 음계를 옮기는 작업이에요.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귀와 손이 정확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수학이나 과학 과목같이 정확성과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내용을 공부할 때 연결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사회가 복잡화·다원화될수록 창조적 지식을 발휘하는 사람이 절실해진다. 이런 가운데 임 씨가 강조하는 르네상스적 인간상은 최근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임 씨는 대학교 1학년인 딸에게 “‘전혀 기죽지 말고 공부하라’며 딸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말을 자주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같은 과 학생들 가운데 영재고, 과학고 출신이 많은데 이 아이들은 현재 대학교 1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수학이나 과학을 이미 고등학교에서 거의 다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딸은 일반고를 졸업해 따라가기가 다소 벅차지만 나중에 3~4학년으로 올라가서는 높은 성과를 이룰 거라고 얘기해요.”
임 씨는 아이가 어렸을 적부터 어문, 철학, 사회, 경영, 경제 등 인문학적 지식들을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통찰할 수 있는 컴퓨터공학도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철학과 출신의 공학도인 것처럼 제 아이도 인문학과 예술적 감각 그리고 첨단기술에 관한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죠.”
선행학습 장단점 따져봐야 한다!
선행학습은 과연 득(得)이 될까, 해(害)가 될까. 선행학습을 하면 학습할 내용에 대한 공부를 미리 하게 되는 것이므로 학교 수업을 받을 때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업에 더 열심히 참여하게 되는 동기부여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한다고 해서 유행하듯이 하는 선행학습은 아이에게 부담감만 줄 뿐이다. 어설프게 선행학습을 받으면 아이는 자칫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을 다 아는 듯한 착각에 빠져 수업을 소홀히 하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다.
임 씨는 “선행학습에 대해 이 같은 장단점을 명확히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 후 자신의 아이에게 선행학습이 필요한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임 씨의 주장이다. “선행학습이 무조건 좋거나 그렇다고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른 아이보다 앞당겨서 공부해 ‘저만큼 앞질러 가야겠다’, ‘좋은 대학에 보내야겠다’ 이런 식의 선행학습은 바람직하지 않는 게 확실해요. 맹목적인 선행학습보다는 아이가 정말 적성과 관심을 보이는 과목에 대해 선행학습을 시켜준다면 잠재된 능력을 일깨울 수 있고 (아이가) 보다 자신감 있는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임 씨가 선행학습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딸의 문·이과 선택 기로에 섰던 당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큰 딸이 고등학교에서 문·이과를 선택하기 전까지는 문과 소질이 다분해 문과에 갈 줄 알았어요. 그래서 수학이나 과학 과목에 대한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어요. 만약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선행학습이 이뤄졌다면 고등학교 시절 여유를 갖고 보다 깊이 있는 공부할 수 있었을 거예요.”
대학 진학 결과를 놓고 보면 큰 아이는 자기주도적 학습태도가 잘 형성됐던 탓에 이과의 수학, 과학 과목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었고 오히려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었다. 선행학습에 관심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라면 이 대목에서 임 씨가 언급한 ‘선행학습의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를 잘 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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