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학협력의 효시, '평양 숭실 기계창' 사진 최초 공개

부미현 | bmh@dhnews.co.kr | 기사승인 : 2014-04-15 17: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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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숭실대서 기증자 윤명호 목사 사진자료 기증식 가져

▲안라공업소(기계창의 개명)는 미 북장로교 선교회 직속 목공, 철공 공업소로서 당시 중학교, 전문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했다. 앞줄 가운데 앉은 분이 윤기화 장로.
평양 숭실대학교 기계창이 우리나라 산학협력의 효시임을 입증하는 사진 자료들이 공개됐다.


숭실대는 15일 오전 교내 베어드홀 4층 회의실에서 ‘평양숭실 기계창 사진자료 기증식’을 가졌다.


사진을 기증한 윤명호 목사는 당시 숭실기계창 창장 및 기술학습원장을 맡았던 고 윤기화 장로의 아들이다. 기증식에는 윤 목사를 대신해 강은홍 목사가 대신 참석했다.


1897년 신앙과 지식이 조화된 ‘실용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평양 땅에 ‘숭실’을 세운 베어드(배위량) 박사(美 북장로교 선교사)는 출범 초기의 입학생 대부분이 성적은 우수하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사정을 알고 당시 미국에서 널리 행해지던 산학협력 모델인 ‘학생자조기관’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근로활동에 참여하며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마련할 뿐 아니라 졸업 후 자립과 직업선택에 유용한 기술 교육도 받을 수 있게 했다.


처음엔 건축노동 등 단순한 일만 하다 점차 일거리가 다양해졌고 특히 1902년 미국인 목재상 사무엘 데이비스가 후원한 학생자조사업 발전기금 5천 달러로 교내에 110평 규모의 ‘T’자형 공장을 지어 이를 ‘기계창(機械廠’, The Anna Davis Industrial Shop)이라 명명하기에 이른다.


특히 1907년 미국 병기 제조창의 전문경영인 맥머트리 장로가 기계창을 맡아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목공, 철공, 주물, 유리공 등 기술 교육 종류와 사업 규모가 대폭 늘어나게 됐다. 기업과 학교 간 협업의 기틀이 본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연간 약 100여명의 학생이 기계창 작업으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익힌 기술능력으로 이후 우리나라 산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기업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대표적 인물이 우리나라 방직업계를 대표하는 일신방직의 설립자이자 숭실의 2~4대 이사장과 9대 총장을 지낸 김형남 박사가 이곳 기계창 출신이다.


숭실대 관계자는 “창조와 융합이 화두인 요즘, 창의적 실용인재 육성을 위한 창조융합교육이 117년 전 이 땅의 숭실대학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며 기증 사진의 뜻과 의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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