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저널 정성민 기자] 정부의 반값등록금 정책이 대학의 교육여건을 악화시키고, 국내 대학들의 고등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대학들은 반값등록금 정책에 따른 등록금 동결·인하에 대입전형료 인하와 입학금 단계적 폐지까지 겹치며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학 총장들이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장호성 단국대 총장·이하 대교협)는 30일 서울 양재동 The-K호텔서울 컨벤션센터 2층 그랜드볼룸에서 '2018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2017년도 사업실적·결산 보고, 2017년도 회계·업무감사 결과 보고, 2018년도 사업계획·예산(안) 심의, 제19대 임원 선출, 고등교육 현안 논의 등이 진행됐다.

■장호성 회장,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학 역할 중요" = 먼저 장호성 대교협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회장은 "'변화'와 '혁신'은 지난해 우리 사회를 압축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새정부 출범 후 많은 변화를 겪었다"면서 "교육부는 고등교육의 새로운 비전과 정책들을 제시했고, 대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회적 책무성 이행과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부 시책에 최대한 협조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대입전형료 인하, 입학금 폐지, 교내 장학금 지원 확대 등 대학은 다시 한 번 허리띠를 동여맸고 정부는 양적 조정 위주의 획일적인 대학구조개혁 탈피, 일반재정지원 유연화, 학사제도 개선 자율화 등의 정책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직·간접적 지원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며 "포항 지진 발생 직후 대입전형 일정 조정에 교육부와 대교협이 신속하게 합의한 결과 우리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대입문제를 차질없이 안정적으로 진행했다. 이는 정부와 대학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한 협업의 예"라고 소개했다.
장 회장은 "대교협은 지난해 9월 고등교육미래위원회를 발족하고 미래 고등교육 주제를 탐색, 의제를 확정한 뒤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가교육회의에 건의해 백년지대계 미래 교육의 방향성과 청사진을 공동으로 마련함과 동시에 일반 국민에게 확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면서 "이와 동일선상에서 대교협은 '2018년도 정기총회 정책건의안'을 발표하고, 대학의 교육력 회복과 재정 확충을 위한 방안을 교육 당국과 숙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장 회장은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교육'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국가적 위기 순간에 현실적 해결책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대변되는 미래사회에서도 '교육'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대학은 교육 주체이자 차세대 인재를 육성, 배출하는 기관으로서 역할과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차대한 시기에 대교협은 국내 4년제 대학의 유일한 통합 협의체로서 공공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2018년이 고등교육 재도약의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반값등록금 정책, 대학 교육여건 악화 = 대교협 정기총회의 최대 화두는 '재정난'이었다. 특히 대교협은 고등교육 현안 논의를 통해 '10년간 지속된 대학등록금(반값등록금) 조치에 대한 보완정책 건의문'을 발표하며, 반값등록금 정책 이후 대학 교육의 위기 상황을 공개했다.
강낙원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은 "지난 수년간 대학은 학생들의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동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학들은 등록금을 동결·인하하면서도 학생들을 위한 교내장학금은 대폭 증대시켜 왔다"면서 "이러한 노력 뒤에는 교육여건 악화, 국제경쟁력 하락 등 대학의 미래를 걱정하게 하는 암울한 결과도 함께 나타났다"고 밝혔다.
반값등록금 정책은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도입됐다. 그동안 정부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대학들의 등록금 동결·인하를 유도했다. 대학들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반값등록금 정책에 부응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정책 이후 대학의 교육여건 개선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실제 대교협에 따르면 기계기구매입비는 2011년 3622억 원에서 2016년 2978억 원으로 644억 원 감소됐다. 연구비는 5397억 원에서 2016년 4655억 원으로 743억 원 감소됐다. 실험실습비는 2011년 2145억 원에서 2016년 1940억 원으로 205억 원 줄었고, 도서구입비는 2011년 1511억 원에서 2016년 1387억 원으로 124억 원 줄었다. 기계기구매입비,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구입비 등은 통상 직접교육비로 구분된다.
또한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대학 재정이 감소하면서 실험실습기자재 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2005년 이후 2017년까지 연구수행주체별 3000만 원 이상 연구장비 구축 현황을 보면 전체 5만 9830건 가운데 지자체출연연구소 25.7%(1만 5366건), 정부출연연구소 24.1%(1만 4398건)인 데 반해 대학은 0.8%(478건)에 불과했다. 전체 구축액(10조 1685억 원)에서도 정부출연연구소는 32.5%(3조 3020억 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학은 1%(994억 원)에 그쳤다. 쉽게 말해 대학들이 연구환경 개선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연구환경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대학의 교육여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강 소장은 "등록금 동결과 인하, 국가장학금 확대에 따른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축소 등으로 대학의 재정 수입이 감소했다. 직접교육비 지출 축소는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며 "1990년 중·하반기부터 대학이 구입한 고가 기자재들은 이미 노후화가 진행됐다. 하지만 노후 기자재 교체를 위한 대체 실험실습기자재 가격은 이전 기자재에 비해 고가여서 예산 증가가 없으면, 기자재 노후도가 더 급속히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교협은 반값등록금 정책이 국내 대학들의 고등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 하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IMD(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국제경영개발연구원) 교육경쟁력 평가와 World Economic Forum(이하 WEF)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 국내 대학들의 고등교육경쟁력 순위와 국가경쟁력 순위가 동반 하락했기 때문이다.
IMD 교육경쟁력 평가에서는 국내 대학들의 교육경쟁력이 2011년 39위에서 2017년 53위로 떨어졌다. WEF 국가경쟁력평가에서는 국가경쟁력이 2011년 24위에서 2017년 26위로 하락한 가운데, 대학시스템의 질 부문의 경우 2011년 55위에서 2012년 44위로 상승한 뒤 2013년 64위에서 2017년 81위로 급락했다.
강 소장은 "WEF 국가경쟁력평가 지표 중에서 대학시스템 질의 순위가 2013년에 20단계 큰 폭으로 하락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 우리나라 고등교육경쟁력이 위기 상황임을 알 수 있다"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하고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대학경쟁력 확보를 위해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의문 채택, 정부와 국회에 전달 = 이에 대교협은 정기총회에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명의로 반값등록금 정책 보완을 위한 건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와 국회에 전달할 방침이다.
대학 총장들은 건의문에서 "10년간 지속된 반값등록금 조치에 따라 교육 투자가 위축되고, 대학 교육력 상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대학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높은 가격의 해외 전자학술자료에 대한 국가 라이선스 확대 지원 ▲낙후된 대학 실험실습 기자재 교체와 개선 지원 ▲학업·취업 경쟁 스트레스에 노출된 대학생의 심리적 위기 극복과 인성 계발 지원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의 상생적 고등교육 연계체제 강화 지원과 국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학 총장들은 "지난 10년간 반값등록금 조치에 대한 정책 성과를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대학사회가 공동으로 정책평가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그동안 대학은 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등록금 동결·인하, 장학금 확대, 입학금과 대입전형료의 단계적 감축·폐지 등 정부 정책에 부응했다"고 말했다.
대학 총장들은 "그 결과 대학재정은 한계 상황에 이르고 대학 교육여건이 악화, 국제경쟁력이 더욱 떨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며 "대학 교육력 회복을 위해 향후 5년간 매년 2조 8000억 원씩 추가 투자, 2023년까지 고등교육예산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고등교육재정의 단계적 확충모델' 정책을 제안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고등교육재정지원법' 제정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회장 이승훈 세한대 총장·이하 사총협) 역시 같은 날 서울 양재동 The-K호텔서울 컨벤션센터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사립대에도 정부의 일반재정을 지원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 정부와 국회에 건의키로 했다.
사총협은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동결 조치로 고등교육의 질적 저하가 가시화되고 있다"면서 "이를 방치할 경우 고등교육 경쟁력은 물론 정상적인 학생 수업도 이뤄질 수 없다는 고등교육의 위기와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결정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총협은 "결의문의 핵심은 사립대에 일반재정지원이 실질적으로 가능토록 사립대 재정지원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고등교육 전반의 재정 확보를 위한 교부금법 제정도 시급하다는 점"이라며 "금년 상반기에는 '고등교육의 재정 확대를 위한 입법 방향' 세미나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교협 정기총회에서 오덕성 충남대 총장(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권태환 안동대 총장(지역중심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이승훈 세한대 총장(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이 신임 부회장단으로 선출됐으며 이상경 경상대 총장과 강희성 호원대 총장이 신임 간사단으로 선출됐다. 신임 부회장단과 간사단 임기는 2018년 4월 8일부터 2020년 4월 7일까지다. 또한 대교협은 자체적으로 수익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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