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저널 임지연 기자] 일제 강점기 일본의 동북지역 하나오카 광산이 허물어져 한인 징용자 11명과 일본인 노동자 11명이 생매장당한 나나쓰다테(갱도 붕괴) 사건 전후 한인 징용자들이 배급의 부족 등 회사 측의 부당함에 맞서 조선인들이 투쟁한 근거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관련 연구에 천착해 온 전남과학대학교(총장 이은철) 김정훈 교수는 “일본의 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쓴 르포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과 사건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쓴 시,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에 전시됐던(2월 23일~5월 26일) 판화 ‘하나오카 이야기’ 중 2편의 작품이 모두 조선인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해준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하정웅미술관에서 2월 28일 열린 ‘강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과 진상규명-일본 다자와호수 주변과 하나오카광산을 중심으로’라는 주제 전시연계 세미나에서 발제한 이후 ‘하나오카 이야기’ 전시회(2월 23~6월 26일)를 지켜보며 관련 자료를 뒤척이다가 위의 내용을 발견했다.
나나쓰다테 사건의 여파로 붕괴된 하나오카강 수로변경 작업을 위해 다수의 중국인 포로가 투입, 1년여 년 동안의 전범기업 가시마구미(가시마건설)의 기아와 린치, 학대에 못 이겨 1945년 6월 30일 봉기를 일으켰으나 모두 붙잡혀 대량학살당하는 하나오카 사건이 일어났다. 1년여 동안의 희생자는 418명. 따라서 나나쓰다테 사건은 그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하나오카 이야기’는 하나오카 사건을 직접 체험했거나 목격한 현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판화작가와 시인이 그런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목판화와 서사시로 표현한 목판화집이다. 1951년에 일본에서 책으로도 출간됐으며, 1981년 일본 무묘샤(無明舎)에서 재판됐다.
김 교수는 “판화작가 니이 히로하루(新居広治) 등이 새긴 판화 하나하나에는 시인 기타 세츠지(喜田設治)가 쓴 시가 딸려 있어 사건의 내막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 세츠지 시인은 첫 번째 판화 ‘나나쓰다테의 낙반’을 시로 표현해 ‘나나쓰다테가 무너지네!/“아버지를 살려내라!”/회사 놈들은 뭘 했는가/위령제 때 돈 몇 푼 부조했을 뿐/산 채로 매장된 22명의 유골은/지금도 그대로 44년 5월의 일일세’라고 썼다.
1944년 미국과의 전쟁수행을 위해 일본전범 기업(도와홀딩스=동화광업)이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 징용자에게 중심 기둥도 세우지 않고 난굴을 명령해 하나오카강 밑을 파다가 나나쓰다데 갱도가 붕괴돼 일본인 11명과 조선인 11명이 생매장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노래한 것이다. 유골 수습이 안 된 사실도 지적했다.
세츠지는 ‘투쟁하는 조선인들’에서는 ‘조선의 노동자들- 농부들도 징용되어 왔지/그 한반도 사람들/마침내 참지 못하고/우루루 사무실로 몰려와/“임금을 올려라!”/“배급을 똑바로 해라!”/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손뼉쳤지/조선인들이지만 용기가 대단해!’라고 썼다.
이는 회사 측에서 조선인들에게 저임금에다가 배급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아 투쟁한 것을 그대로 시로 표현한 것이다.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의 현장취재 보고서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소명출판, 2015) 73페이지에도 ‘물을 많이 넣으니 저울에 단 밥은 무거워졌으며 그 만큼 쌀의 양이 줄어서 “물을 많이 넣지 말라”고 항의했다. 또한 배급주를 속여 다른 곳에서 진탕 마시고 소란 떠는 일본인 경계들을 모두 적발한 적도 있었다’고 적었다”며 “조선인들이 나나쓰다테 사건 전후에 투쟁한 장면이 시와 판화, 그리고 작가의 보고서에 모두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르포적 소설 <땅밑의 사람들>에도 조선인에 대해 회사 측에서 부당하게 대우한 사실과 이에 항의하며 일본인 경계들에 맞서는 내용이 나온다”며 “판화와 시, 작가가 쓴 르포와 작품이 모두 일치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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