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주의 목요에세이] 인간적인 오징어 게임의 조건

대학저널 | webmaster@dhnews.co.kr | 기사승인 : 2021-11-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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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다.


오징어 게임은 각자 힘든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절박한 사람들이 총상금 456억 원을 얻을 수 있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 처절한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게임들이 치열한 두뇌 플레이나 힘겨운 몸싸움 등이 필요한 난이도 높은 게임들이 아니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달고나)', '구슬치기' 등 모두 어렸을 때 그저 재미로 해 보았던 것들이어서 이러한 게임들에서 패배한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상황이 게임에 참가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듯 했다.


처음엔 이렇게 위험한 게임에 애초에 참가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목숨을 건져서 사회에 나와 봐야 돈이 없으니 계속해서 끝없는 빚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의 상황 자체가 이미 지옥이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죽음의 게임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 안타까우면서 동시에 이들이 이 게임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에 수긍하고 있는 나 자신이 섬뜩하기도 하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로또에 당첨되지도 않은 우리들 대다수는 생계라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 참가하지 않으면 그 어디에서도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심하기로 유명한 나라 아니던가? TV에서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트롯, 밴드, 댄스, 요리 등 그 분야도 다양하다.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젊은 세대들은 경쟁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언젠가 밑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와 두려움을 일상적으로 안고 있어 일찌감치 각종 자격증과 공모전 등 스펙을 쌓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러한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기대도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이다. 기성 세대 역시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취업을 못한 성년 자녀와 부모님을 책임지고 있기에 직장에서 싫은 소리 제대로 못하면서 매번 돌아오는 인사철에 잘리지 않기 위해 치열한 생존 게임을 하고 있다.


원래 경쟁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하지만 그 경쟁이 공정하지 못하다면 사회 구성원간 신뢰와 협력이 깨져 그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다.


경쟁 규칙을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하고,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며,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 된다면 그 경쟁에 모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다.


며칠 전 어느 대선 후보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치와 국가의 역할은 동등한 출발선에서 뛸 수 있도록 기회의 공정을 보장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바닥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과반수의 동의로 오징어 게임을 끝내자고 결심한 참가자들이 현실의 굴레에 지쳐 다시 게임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현실의 경쟁이 드라마 속 처절한 오징아 게임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정치에 두 눈 부릅뜨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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