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주의 목요에세이] 인문학 예찬

이승환 | lsh@dhnews.co.kr | 기사승인 : 2021-12-2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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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모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야기 주제가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과 같은 재테크나 취업과 같은 실용적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국민들 모두가 재테크에 일가견이 있어야 할 것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재테크라고는 은행 예·적금밖에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남들이 이야기할 때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감탄만 할 뿐이라 순간 나 자신이 모자란 사람이 되는 듯하여 씁쓸하다.


특히 중년의 나이에 아직도 예술과 철학 역사 문학과 같은 인문학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면 “넌 아직도 순수하구나”라고 말은 하지만 ‘아직도 애들같이…언제 철이 들래’와 같은 시선을 종종 받곤 한다.


'인문학'이라는 세 글자를 들으면 나에게 떠올려지는 단어는 '어렵다'라는 것과 ‘실용적이지 않다’라는 것이다. '어렵다'는 느낌을 갖는 근거는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해하지 못할 무수한 질문들과 이에 대해 하나로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대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 ‘실용적이지 않다’라는 말은 취업률 자체가 그 대학의 명성을 이어가는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현실의 상황에서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당장 실용적인 학문은 아니기 때문에 요즘 같은 시기에 인문학이 홀대를 받는 것 같다. 특히 고등학교-대학교-취직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공무원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어 어쨌든 취직할 수 있는 대학, 학과가 인기 학과로 부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게 들릴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좋다고 한들, 우리는 한없이 바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가 자라나고 생활하는 시간 속에서는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풍요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부족하다. 습관이 되지 않으니 생활 속에서 잠깐 짬을 내어 인문학과 관련된 책을 읽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 동안이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동시에 내 삶을 이해하고 깨어있는 채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인문학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 때로는 역사 속에서, 때로는 미술 작품이나 음악을 통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악해 보면서 나와 내 삶을 둘러싼 것들을 이해하고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깨달음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인문학'은 즐거움을 말하는 듯하다. 살아가는 일이 즐거운 일이라면 인문학은 즐거운 것이고,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다면 인문학은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삶의 양식이나 방법은 다양하기 때문에 삶은 정해진 답이 없다. 그래서 나와 다른 존재나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남편은 30여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홀로 짊어진 가장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눈가리개를 쓰고 전력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회사일 이외의 일은 등한시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나 역시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신경을 쓰느라 남편이 어떤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치열했던 삶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니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이 오히려 더 남같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야말로 다시 젊었을 때의 예전처럼 사는데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예술과 철학 역사와 같은 이야기들로 서로 다시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이번 주말에 남편과 단둘이 볼만한 공연이나 전시회라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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