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앞두고 내용을 잘 모르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증가하고 있고 이를 이용한 사교육 기관들의 설명회가 연일 호황이다.
2022년 특성화고 학점제 도입에 이어, 일반계고도 2023학년도 고1(현 중2)부터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란 고등학생이 대학생처럼 진로에 따라 자율적으로 다양한 교과를 선택해 들으며 3년 동안 192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이 가능한 제도로서 학생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진로와 적성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어서 학생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존중해 주고, 자기 주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제도다.
학교에서 짜준 시간표대로 선택의 여지 없이 강요된 수업과 획일적인 점수로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육의 부작용을 익히 알고 있는 나와 비슷한 세대들이 보기에 석차를 없애고 다양한 수업이 개설되어 학생 스스로 각자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여간 매력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서열화된 평가체제와 대입제도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자율과 선택은 한계를 가진다.
정부가 상대평가를 고집하며, 정시 대입제도를 계속 확대하는 상황에서 석차를 없애고 절대평가를 강조하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근본 취지에 위배되고 역설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그 이후의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학 진학과 상관없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교과목을 원하고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그리고 대졸자와 고졸자 간 임금 격차나 근무 환경의 차이가 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모두 대학 진학을 지상 과제의 목표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원하게 된다.
입시를 위해 교육 현장에서는 선발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게 되고 그 경쟁이 공정해야하기 때문에 상대평가나 시험점수 위주의 정시를 선호한다.
그런데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은 입시위주 교육이 아닌 절대평가이고 석차를 내지 않는 교육과정인 것이다. 학교 밖의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들이 개선되지 않는 한 교과목 선택도 흥미와 적성보다 입시와 연계된 선택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아직 16~17세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모르거나 흥미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생들은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성인인 대학생들조차도 자신의 진로를 잘 모르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는 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환경 차이, 교원 부족 등의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큰 학력 격차가 벌어질 우려도 있다.
소위 SKY로 불리우는 대학과 수도권 인근 교육청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움직임이 벌써부터 부산한 걸 보면 고교나 대학이 많아 공동 교육이 수월한 수도권은 지방과 달리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이는 곧바로 입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교육과정이라는 말은 참으로 근사하다. 하지만 그 자율과 선택에 있어서 그 제반 조건들이 잘 마련되지 않으면 자율적인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은폐시킬 수도 있다.
교육과정, 교원 수급, 예산, 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한 뒤 현실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천천히 실시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다. 대학입시제도나 교육정책은 계층 이동 사다리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또 그렇기에 특정 계층에 유리하지 않도록 공정함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고교학점제의 급격한 실시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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